도서관 반납일에 쫓겨 이 책을 완전히 이해하지 못 하고 이 글을 적게 되었다. 잘못 해석한 부분에 대한 지적은 해주면 감사하고 다시 한 번 읽게 된다면 나의 생각이 바뀔 수 있다는 점을 염두에 두었으면 좋겠다.
이 책은 잡지사 측의 요청으로 에코와 마르티니 추기경이 서신 교환으로 토론한 것을 엮은 것이다.
에코는 이 시대의 대표적 지식인이고 마르티니 추기경 역시 에코 못지 않은 지식인이다.
에코는 8개 국어, 마르티니는 11개 국어를 마스터 했다고 한다 -_-;
종말/생명/여성/윤리의 주제를 가지고 토론을 했는데 질문을 던지고 상대가 대답하는 식으로 진행되었다.
먼저 에코가 종말에 관해 이야길 했다. 둘의 토론은 정확하진 않지만 1996년 쯤으로 밀레니엄 종말론이 나돌아다니던 시기일 것이다. 마르티니의 대답은 그 장의 제목에 나와 있듯이 '희망은 종말을 [궁극 목적]으로 바꾼다.' 라는 것인데, 솔직히 이 파트는 무슨 말인지 모르므로 미뤄 놓겠다.
생명에 관한 토론에서 에코는 생명은 어디에서 오는지(무엇인지) 가톨릭 교회의 견해를 물어본다.
이에 대한 답은 '생명은 하느님이 나누어 주신 것'으로 그것만으로 지고지순한 것이라고 한다. 그에 따라 낙태를 반대하고 자살을 반대하는 등 생명에 해가 되는 것이라면 무엇이든지 반대한다는 것인데 고위 사제직이며 지성인인 마르티니 추기경의 색다르고 타당한 견해를 기대했던 나로썬 이런 전통 가톨릭 교리가 나오니 실망 할 수 밖에 없었다.
여성은 통과
이번에는 마르티니 추기경이 '신이란 절대적 지침이 없는 비신앙인의 윤리는 어디서 나오는 것'인지 물어보는데
이에 관해선 C.S 루이스의 [순전한 기독교]에서도 나온다. 이런 윤리=신이란 견해는 오늘날 대부분의 종교인들이 써먹는 수인듯하다. 개인적으로 이에 대한 에코의 답이 내 생각과 같아 마음에 드는데 [타자는 우리 속에 있다]('나'를 이루는 것은 타인이고 타인의 시선이다.)를 전제로 타인을 의식함으로 자연의 윤리가 생기며 그걸로 충분하지 않느냐고 말한다.(충분치 않다고 생각하는 것은 당연하다고 덧 붙였다) 그러면서 추기경이 말한 절대적 윤리를 공격하는데 (에코가 온건한 무신론자라 도킨스나 히친스처럼 개같이 물어뜯진 않는다.) 이것을 추기경이 받아들였는지까지 보고 싶지만 아쉽게 편지는 여기서 끝나고 만다.
이 책을 보면 두 사람의 방대한 지식에 일단 놀랄 수 밖에 없을 것이다. 지성인들의 토론을 어떻게 이끌어 나가는지를 보고 싶다면 이 책을 추천한다.
이 책의 궁극적 목적은 신앙인과 비신앙인의 합의점을 찾는 것이다. 서로의 견해를 듣고 이해하는 것은 그 첫걸음이다.
두 사람의 서로에게 겸손한 태도는 모든 신앙인과 비신앙인이 배워야 할 것이라 생각한다.
이 책은 잡지사 측의 요청으로 에코와 마르티니 추기경이 서신 교환으로 토론한 것을 엮은 것이다.
에코는 이 시대의 대표적 지식인이고 마르티니 추기경 역시 에코 못지 않은 지식인이다.
에코는 8개 국어, 마르티니는 11개 국어를 마스터 했다고 한다 -_-;
종말/생명/여성/윤리의 주제를 가지고 토론을 했는데 질문을 던지고 상대가 대답하는 식으로 진행되었다.
먼저 에코가 종말에 관해 이야길 했다. 둘의 토론은 정확하진 않지만 1996년 쯤으로 밀레니엄 종말론이 나돌아다니던 시기일 것이다. 마르티니의 대답은 그 장의 제목에 나와 있듯이 '희망은 종말을 [궁극 목적]으로 바꾼다.' 라는 것인데, 솔직히 이 파트는 무슨 말인지 모르므로 미뤄 놓겠다.
생명에 관한 토론에서 에코는 생명은 어디에서 오는지(무엇인지) 가톨릭 교회의 견해를 물어본다.
이에 대한 답은 '생명은 하느님이 나누어 주신 것'으로 그것만으로 지고지순한 것이라고 한다. 그에 따라 낙태를 반대하고 자살을 반대하는 등 생명에 해가 되는 것이라면 무엇이든지 반대한다는 것인데 고위 사제직이며 지성인인 마르티니 추기경의 색다르고 타당한 견해를 기대했던 나로썬 이런 전통 가톨릭 교리가 나오니 실망 할 수 밖에 없었다.
여성은 통과
이번에는 마르티니 추기경이 '신이란 절대적 지침이 없는 비신앙인의 윤리는 어디서 나오는 것'인지 물어보는데
이에 관해선 C.S 루이스의 [순전한 기독교]에서도 나온다. 이런 윤리=신이란 견해는 오늘날 대부분의 종교인들이 써먹는 수인듯하다. 개인적으로 이에 대한 에코의 답이 내 생각과 같아 마음에 드는데 [타자는 우리 속에 있다]('나'를 이루는 것은 타인이고 타인의 시선이다.)를 전제로 타인을 의식함으로 자연의 윤리가 생기며 그걸로 충분하지 않느냐고 말한다.(충분치 않다고 생각하는 것은 당연하다고 덧 붙였다) 그러면서 추기경이 말한 절대적 윤리를 공격하는데 (에코가 온건한 무신론자라 도킨스나 히친스처럼 개같이 물어뜯진 않는다.) 이것을 추기경이 받아들였는지까지 보고 싶지만 아쉽게 편지는 여기서 끝나고 만다.
이 책을 보면 두 사람의 방대한 지식에 일단 놀랄 수 밖에 없을 것이다. 지성인들의 토론을 어떻게 이끌어 나가는지를 보고 싶다면 이 책을 추천한다.
이 책의 궁극적 목적은 신앙인과 비신앙인의 합의점을 찾는 것이다. 서로의 견해를 듣고 이해하는 것은 그 첫걸음이다.
두 사람의 서로에게 겸손한 태도는 모든 신앙인과 비신앙인이 배워야 할 것이라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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